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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울대 총장, 성낙인이 추천하는 역사소설 ㅣ세종이 한성을 비운 48시간, 왕후가 나라가 되었다 『한성대화재―소헌왕후』

종묘가 불탔다면,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군 세종의 시대는 끝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까.

그리고 스무해 뒤, 훈민정음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성낙인 I 전 서울대 총장

전 서울대 총장, 성낙인이 추천하는 역사소설 ㅣ세종이 한성을 비운 48시간, 왕후가 나라가 되었다 『한성대화재―소헌왕후』
성낙인| 제 26대 서울대학교 총장, 법학자

1426년, 세종 8년 2월 15일과 16일.

왕이 부재하고 법이 작동하지 않던 무법천지의 48시간. 한양은 이틀 동안 불탔다. 세종대왕은 강무를 위해 도성을 비웠고, 불길을 틈타 화적떼가 거리를 휩쓸었다. 국법의 집행자들은 몸을 사렸고, 도성의 질서는 무너졌다. 그때 누가 나라를 다스렸는가. 세종대왕의 정비, 소헌왕후였다.

전 서울대 총장, 성낙인이 추천하는 역사소설 ㅣ세종이 한성을 비운 48시간, 왕후가 나라가 되었다 『한성대화재―소헌왕후』
역사실화소설 ㅣ한성대화재 -소헌왕후-

나는 오랫동안 서울대학교에서 헌법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민주공화국에서 국민은 통치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국민은 주권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알고, 말하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글을 읽지 못하고 자신의 뜻을 표현할 수 없다면 권리는 온전히 권리가 되지 못한다. 권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면, 법은 그 사람을 제대로 지켜줄 수 없다.

예선영 작가의 『한성대화재―소헌왕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역사소설, 국가재난소설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한성대화재라는 커다란 물줄기가 한강처럼 흐르고, 매력적인 인물들은 눈물을 자아내며 감동을 주고, 이야기 서사는 치밀하게 얽혀 있고 빠르며 흥미진진하고 반전을 준다.

전 서울대 총장, 성낙인이 추천하는 역사소설 ㅣ세종이 한성을 비운 48시간, 왕후가 나라가 되었다 『한성대화재―소헌왕후』
@ 성낙인 | 전 서울대학교 총장, 법학자

에 내려앉는 잿가루, 칼끝이 살결을 스치는 순간, 사자탈의 거친 갈기, 한강의 검은 물빛, 석당 한 조각의 달고도 씁쓸한 맛이 눈앞에 영화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흥미로운 것은 왕후의 시호가 소헌(昭憲)이라는 사실이다. ‘헌(憲)’은 법이자 근본이며,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한다. 왕후의 이름에 새겨진 이 한 글자가 왕이 없던 이틀, 화염과 약탈 속에서 펼쳐지는 소설의 서사와 절묘하게 포개진다. 소설 속 소헌왕후는 무법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먼저 지키고, 누구를 먼저 구하며, 통치자는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에는‘무지(無知)’라는 이름의 사내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무엇에 동의하는지도 모른 채 문서에 지장을 찍고, 그 한 번의 지장으로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글을 읽지 못했다는 이유로 속고, 빼앗기고, 마침내 자신의 생명까지 잃는다. 나는 이 장면에서 헌법을 가르쳐온 사람으로서 깊은 통증을 느꼈다.

전 서울대 총장, 성낙인이 추천하는 역사소설 ㅣ세종이 한성을 비운 48시간, 왕후가 나라가 되었다 『한성대화재―소헌왕후』
전 서울대 총장, 성낙인이 추천하는 역사소설 [한성대화재 -소헌왕후]

문자는 단순한 기록의 수단이 아니다. 문자는 권리를 깨닫게 하고, 억울함을 말하게 하며, 인간이 권력 앞에서 자신의 뜻을 증언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문자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을 타인의 해석과 처분에 맡겨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법은 평온한 시대의 조문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누가 책임을 지고, 무엇을 지키며, 어떤 원칙에 따라 행동할 것인가를 가리는 규범이기도 하다. 『한성대화재―소헌왕후』를 읽으며 나는 오래전부터 품어온 이 생각을 다시 확인했다. 동시에 한 가지 새로운 질문과 마주했다. 법이 존재하지만 작동하지 않는 순간, 통치는 무엇으로 성립하는가.

소설 속 한성은 단순히 거대한 불길에 휩싸인 도시가 아니다. 왕은 없고, 치안은 무너졌으며, 국가 권력은 사실상 공백에 빠져 있다. 재난을 틈타 재물을 노리는 자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마땅히 백성을 지켜야 할 이들은 책임을 피한다. 이 소설이 진정으로 묻는 것은 화염의 크기가 아니다. 국가 권력이 사라진 자리에 누가 서는가, 그 서늘한 공백을 무엇으로 채우는가이다.

훈민정음 I 세종대왕은 왜 목숨을 걸고 새 문자를 만들었는가 I 『한성대화재 소헌왕후』예선영 지음
훈민정음 I 세종대왕은 왜 목숨을 걸고 새 문자를 만들었는가 I 『한성대화재 소헌왕후』예선영 지음

그 물음 앞에서 소헌왕후는 스스로 답을 만든다. 왕후는 조정 대신들 앞에서 명을 내리고, 궐문을 막아선 좌의정의 목에 칼을 겨누어 궁문을 열게 한다. 그리고 안전한 궁궐 안에 머무르지 않고 백성을 구하기 위해 화염 속으로 직접 뛰어든다.

왕후의 판단에는 분명한 순서와 원칙이 있다. 종묘와 궁궐을 지키되,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위험에 빠진 백성을 구한다. 옥에 갇힌 죄인이라도 불에 타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먼저 생명을 살리고, 죄는 법에 따라 다시 묻는다. 근대 헌법이 비상사태와 권력의 공백에 대비하여 국가긴급권과 권한대행의 질서를 명문화하기까지, 인류는 수많은 혼란과 무법의 시간을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소설 속 소헌왕후는 통치의 원칙을 세운다. 생명을 먼저 구하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며, 혼란 속에서도 지켜야 할 질서를 포기하지 않는 것.

나는 여기서 통치의 본질을 다시 생각한다. 법은 조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위기의 순간에도 원칙을 지켜내는 사람의 결단과 책임을 통해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그것이 성문헌법 이전부터 인간 공동체에 존재해온 헌정(憲政)의 정신일 것이다. 통치자의 정당성은 흔히 혈통과 지위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진다.

전 서울대 총장, 성낙인이 추천하는 역사소설 ㅣ세종이 한성을 비운 48시간, 왕후가 나라가 되었다 『한성대화재―소헌왕후』

그러나 이 소설은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역적의 딸이라는 굴레를 짊어진 왕후가 화염 속에서 백성의 손을 잡는 순간, 통치의 정당성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생겨난다. 백성을 향한 책임과 희생이 한 사람을 진정한 통치자로 세운다.

이 소설이 더욱 깊어지는 지점은 화재가 진압된 뒤에 있다.

소헌왕후는 백성을 구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왕후는 재앙의 근원을 응시한다. 백성들은 글을 몰랐기에 문서에 속고 속는다. 자신이 무엇에 서명하는지도 모른 채 파멸로 끌려갔다. 통치자가 백성을 구한다는 것은 눈앞의 불을 끄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백성이 다시는 같은 불길에 휩쓸리지 않도록 그 원인을 바꾸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세종 역시 이 소설에서 새롭게 읽힌다. 우리는 세종을 이미 완성된 천재 성군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작품 속 세종은 도성을 비웠다는 자책과 신하들의 거센 반대 속에서 고뇌하는 한 인간이다. 그는 눈이 짓무르도록 서책을 살피고, 백성을 위한 문자를 만들기 위해 외롭고 치열한 싸움을 평생 이어간다.

전 서울대 총장, 성낙인이 추천하는 역사소설 ㅣ세종이 한성을 비운 48시간, 왕후가 나라가 되었다 『한성대화재―소헌왕후』
한성대화재 -소헌왕후-

훈민정음 창제라는 국가적 결단이 한성대화재의 기억과 맞닿아 있었다는 작가의 상상력은 매우 인상적이다. 역사 기록이 침묵하는 자리에서 작가는 묻는다. 왜 세종과 소헌의 나라는 그토록 백성의 문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무엇이 그토록 거대한 결단을 가능하게 했을까.

우리는 훈민정음 창제의 동기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백성에게 문자가 없었다’는 말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모른다는 것이 어떻게 한 사람의 권리를 빼앗고, 무지가 어떻게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는지를 체감하게 한다.

법이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최후의 장치라면, 문자는 국민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최초의 장치다. 나랏글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었다.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와 권력 앞에서 자신의 뜻을 밝히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무기였다.

전 서울대 총장, 성낙인이 추천하는 역사소설 ㅣ세종이 한성을 비운 48시간, 왕후가 나라가 되었다 『한성대화재―소헌왕후』
역사소설 중심 I “세종대왕 뒤에 감춰진 가장 위대한 여성” 『한성대화재 소헌왕후』예선영 작가

이 소설은 법과 문자가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 뿌리에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 그리고 백성을 뜨겁게 지키고자 하는 애민의 정신이 놓여 있다.

나는 서울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교육이 무엇인지, 대학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자주 질문받았다. 지식을 생산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물론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나 교육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데 있다. 알아야 선택할 수 있고, 읽을 수 있어야 속지 않으며, 말할 수 있어야 부당한 권력에 맞설 수 있다. 교육은 인간을 무지와 예속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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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제 26대 서울대 총장, 헌법학자 © namu.wiki

소설 속 소헌왕후는 불길 속에서 그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세종을 움직인다. “아침에 배워 저녁에 쓰는 글. 서둘러 주십시오.” 누군가는 밤새 서책을 뒤질 수 있었지만, 누군가는 글자 하나를 몰라 목구멍의 통곡을 하고 목숨을 잃었던 시대. 지식이 소수의 특권이었던 시대에서 모든 백성이 자신의 글을 갖는 시대로 나아가려 했던 그 결단 속에, 대한민국 교육의 정신적 뿌리가 놓여 있다.

독자는 관념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1426년 한성의 골목을 직접 걷고, 타는 냄새를 맡으며, 얼굴을 덮치는 열기와 소매 위에 내려앉는 재를 느낀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서는 이유는 인물들이 완전한 영웅으로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소헌왕후는 두려움을 모르는 성인이 아니다. 배고픔을 느끼고, 아버지를 잃은 상처를 품고 있으며, 석당 한 조각을 입에 물고 간신히 버티는 한 사람이다. 그 연약함 속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국가의 책임을 짊어진다.

바로 그 인간적인 두려움과 상처 때문에 왕후의 결단은 더욱 무겁고 위대하게 다가온다. 완전무결한 성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이 나라를 짊어졌기에, 이 서사는 신화에 머무르지 않고 살아 있는 정치철학이 된다.

예선영 작가의 『한성대화재―소헌왕후』는 역사적 사실의 정밀함과 문학적 진실의 깊이를 함께 성취한 보기 드문 작품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되, 기록이 말하지 않는 자리에서 과감한 질문을 던진다.

전 서울대 총장, 성낙인이 추천하는 역사소설 ㅣ세종이 한성을 비운 48시간, 왕후가 나라가 되었다 『한성대화재―소헌왕후』
소설가·크리에이터·CEO I 예선영 작가

헌법학자로서 나는 이 소설에서 권력 공백기의 통치와 정당성의 기원을 보았다. 교육자로서 나는 문자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힘을 보았다. 그리고 한 사람의 독자로서, 마지막 책장을 덮고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재 위에 남은 것이 빛이었다는 문장이 오래도록 가슴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학자는 사실을 다루고, 소설가는 진실을 다룬다. 오랫동안 나는 그 둘이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 충실하게 복원된 사실과 깊은 문학적 상상력이 만날 때, 우리는 기록만으로는 다다를 수 없었던 역사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이 책을 대한민국 정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권한다. 특히 한글을 사랑하는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이 읽기를 바란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이 문자가 얼마나 많은 고뇌와 눈물, 불길과 죽음의 기억 위에서 태어났는지를 느껴보기를 바란다.

전 서울대 총장, 성낙인이 추천하는 역사소설 ㅣ세종이 한성을 비운 48시간, 왕후가 나라가 되었다 『한성대화재―소헌왕후』
추천도서 I “올해 반드시 읽어야 할 역사소설” 『한성대화재 소헌왕후』I 예선영 지음

이렇게 세종이 없던 자리에서, 왕후가 나라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한 문장으로 이 소설을 권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왕이 없던 그 이틀,

한 여인이 온몸으로 나라를 증명했다.

그 소헌왕후의 이름에

법을 뜻하는‘헌(憲)’이 새겨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 서울대 총장, 성낙인이 추천하는 역사소설 ㅣ세종이 한성을 비운 48시간, 왕후가 나라가 되었다 『한성대화재―소헌왕후』
전 서울대 총장, 성낙인이 추천하는 역사소설 ㅣ세종이 한성을 비운 48시간, 왕후가 나라가 되었다 『한성대화재―소헌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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