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창조자, 정초신 감독: 모두가 멈춰 선 곳에서 다시 출발하라!
AID 에디터: 안녕하세요? 정초신 감독님! 오늘 이렇게 영화계의 거장이신 감독님을 자리에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감독님의 멋진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새로운 도전을 주실 것이라 기대가 되어 설레입니다.
정초신
1. 감독님은 '자카르타'에서 '몽정기 2'까지, 굵직하고 다양한 작품 세계로 흥행을 하셨고 많은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또 대중에게 큰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시면서 영화 발전에 큰 이바지를 하셨지요. 영화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과 에피소드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캐릭터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비결이 있으실 것 같아요.
정초신: 이런 질문에 대한 가장 멋진 대답은, “다음 작품”이 되겠지만, 그런 대답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 분명하기에 지금까지 만들었던 영화 중에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던, 조인성, 김사랑 주연의 “남남북녀”라고 답해야겠습니다.
연변 지역에서 발견된 고구려 고분을 남북한 고고학과 학생들이 연합해서 공동 발굴하고, 그 과정에서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을 했었는데요. 연변에서 촬영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지만, 개봉 후에 '연변에 고구려 고분이라니 말이 안된다’는 언론의 뭇매를 맞은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그리고 고구려 고분 하나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하는 우리 실정에 영화 속에서나마 연변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 하나 지니는 것이 무슨 문제였는지 지금 생각해도 황당합니다.
캐릭터를 연구하기 위해 ‘인간에 관한 연구’를 많이 참고합니다. 혈액형, 사상 의학, 점성학, 에니어그램, 심리학 등에서 만들어지는 인간 관계를 참조해서 캐릭터를 만들고 캐스팅을 하는데요. 요즘은 MBTI, 명리학 등도 공부해서 응용하고 있습니다.
2. 감독님께서는 전설적인 영화인으로서 모델 활동까지 화려한 이력을 갖고 계십니다. 새로운 꿈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비결이 있을 것 같습니다. 모델로 도전하실 때는 어떠한 계기와 준비를 하셨을까요? 모델 활동을 하실 때 에피소드와 어떤 느낌과 생각들을 하셨을까요?
"아!
이걸 한 번 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냥 무턱대고 시작하는 건 아닌 듯 싶어서 공부를 했습니다. 일단 책으로 덤비는 것이 습성이다보니 관련 서적을 긁어모아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초신
Chosin Zeong
정초신: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은 물론 세상의 어떤 직업도 나이가 들면 뒷방으로 밀려나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사람들이 속칭 환갑이라는 나이를 맞닥뜨리면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요.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환갑을 몇 해 앞둔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니 ‘인생 이모작’이라는 단어가 뒤덮고 있었습니다. 나도 찾아야 한다는 위기감에 주위를 둘러보니 백발의 노신사가 런웨이를 걷는 모습이 보이더라구요.
아! 이걸 한 번 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냥 무턱대고 시작하는 건 아닌 듯 싶어서 공부를 했습니다. 일단 책으로 덤비는 것이 습성이다보니 관련 서적을 긁어모아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델 관련 책, 패션 관련 책, 런웨이 관련 책을 뒤지다보니 의상학, 섬유학, 의류학까지 손을 뻗치게 되더군요.
시니어에 대한 관심 역시 공부를 통해 답을 찾아보려 노력했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런웨이를 걷는 모델보다 다른영역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방식으로 전환점을 모색한 다음, 첫 번째 실천 방안으로 시니어모델 진출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결론을 얻었으면 시작해야지요.
시니어 모델을 하기 위해 일단 몸부터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다이어트죠. 당시 몸무게는 98킬로에서 100을 왕복하고 있었으니 형편없었습니다. 일단 앞자리를 7자로 바꾸자고 마음 먹고 혹독한 다이어트를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7자로는 못 바꾸고, 간신히 80.5킬로까지 감량했습니다. ‘더룩오보더이어.코리아’라는 대회에 출전해 '더룩상'을 수상하면서 시니어 모델계에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3. 힙한 신중년층 뉴그레이 시대, 감독님께서는 팬덤을 가지고 계시고 대중들에게 두루 영향력을 끼치고 계시는데요. 감독님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정초신: 대한 노인회 회원이 980만 명입니다. 내년이면 노인회 회원 1,000만 명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시니어라고 일컬어지는 45세 이상 인구는 무려 1,700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시니어가 자신이 ‘노인’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하며 사는 시대입니다. '힙한 신중년 뉴그레이’라는 별칭 또한 시니어들 스스로 만들어서 자신을 묘사하는 단어로 사용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들의 시니어에 대한 생각 또한 신박한 노인으로 보는 것일 뿐입니다. 이 또한 유행이기 때문에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순간적인 현상일 뿐이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외면한다면 그저 뒷방 늙은이로 도태되고 말 겁니다.
"세상 모두가 포기하더라고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오기,
이것에 정초신이 스스로 설정한 매력..."
사람들은 현재 자신의 현상을 카톡 프로필에 담지 않습니까. 저 역시 마찬가지일 듯 싶습니다. 지금 제 카톡에는 ‘모두가 멈춰선 곳에서 다시 출발하라’ 라는 글귀가 쓰여있습니다. 세상 모두가 포기하더라고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오기, 이것에 정초신이 스스로 설정한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4. 최근까지는 아이돌 그룹 백발소년단의 리더로도 활약하고 계십니다. 백발소년단은 기네스북에도 오르며 새로운 문화와 바람을 만들고 계십니다. 또한 [대한노인회] 홍보대사로서 시니어 문화 선구자로서 어떤 점이 가장 보람 고 즐거우신가요?
정초신: 평균 연령 64, 평균 신장 183, 압도적 스케일, 독보적 스타일, 파격적 스토리를 표방하면서 출발한 세계 최초의 시니어 아이돌이라고 우기는 집단이 ‘백발소년단’입니다. 우스개 소리로 방탄소년단의 40년 후 모습을 지금 여기서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시니어 문화의 선구자라고 불러주기는 합니다만, 아직 그런 깜냥은 못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나이 먹으며 살아가는 시니어들이 저희의 활동을 보며 희망을 갖고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보면 그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5. 아이돌 가수로 전향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준비 과정에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와 고령의 아이돌 그룹 활동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정초신: 앞서도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인생 이모작’의 일환으로 계획했던 것이 시니어 모델이었습니다. 그러나 100여 권 이상의 책을 탐독하면서 맞은 결론은 시니어 모델이라는 것은 인생 이모작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머리에 지진이 나도록 고민해서 찾아낸 결론이 ‘가수’의 길을 개척하자는 것이었고, 혼자서는 가요계라는 업장에 이름을 내밀 수가 없을 터이니 ‘떼’로 움직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첫 번째 단계로 시니어 모델계로 들어선 것이고, 어느 정도 성과를 낸 다음에는 함께 작업할 동료를 구하기로 마음 먹었던 겁니다.
‘백발소년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사람들을 찾기 위해 키가 180 언저리에 있고 머리가 백발인 시니어 모델 99명을 접촉했습니다. 직접 만나기도 하고, 전화를 걸기도 하면서 설득을했는데 94명으로부터 거절당했습니다. 일단은 믿지 않더군요. 그 나이에 무슨 해괴망칙한 짓이냐는 표정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노래를 못한다거나 경제적으로 어렵다거나 하는 말들로 완곡하게 거절했지만, 속내는 그랬을 겁니다.
“백발소년단, 시니어 아이돌, 저게 무슨 미친 짓이야. 저게 어떻게 성공하겠어?”
백발소년단의 그룹 활동의 의미는 딱 하나일 겁니다. 인생 이모작이라는 말을 그저 단어로 생각하지 말고 진짜 실천으로 생각하자는 것, 따라서 백발소년단의 의미는 우리가 어디에 가든 이야기하는 ‘도전의 아이콘’, ‘실천의 이데아’, ‘신박한 아이템’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6. 묵직한 이야기나 무거운 주제를 해학과 유머를 넣어 경계를 없애는 고상한 힘, 미친 열정, 대박과 쪽박 같은 매력적인 반전, 풍부한 지성 등 많은 영화에서나 감독님의 책과 작품을 보면 느껴지는 것들입니다. 감독님은 그런 힘이 있으십니다. 최근 제가 읽은 [사랑은 끝이 난다]라는 시집은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만큼 신선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평소 루틴은 어떠하시고 어떤 운동으로 체력 관리를 하시며 어떻게 영감을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 감독님만의 인생관과 세계관 또는 철학을 듣고 싶습니다.
정초신: 예술을 하는 사람은 무언가에 집착을 해야 한다던데, 저는 딱히 집요하게 추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우연히 ‘어린 왕자’에 관한 신문 전면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생텍쥐뻬리의 ‘어린 왕자’는 국내에도 400여 종이 출판되었고, 전세계적으로 9,000여 종이 발간되었다는 취지의 기사였습니다.
그 순간 ‘이건 좀 재미지겠는 걸’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린 왕자’ 모으기를 시작했습니다. 지금 대략 5~60개국 언어로 된 100여 권의 ‘어린 왕자’가 책꽂이에 꽂혀있습니다.
‘어린 왕자’를 읽다 보니 ‘어린 왕자’가 사랑 받을 줄만 알지, 사랑하는 데는 영 미숙한 이기적인 인간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방적인 사랑의 아픔에 관한 시를 한 편 한 편 써내려 갔었는데 그것이 어느덧 200여 편이 되었고, 그 중에서 80여 편을 골라 시집으로 냈습니다.
물론 몇 권 팔리지 않았습니다. 시가 읽혀지지 않는 세상에 시집을 내는 것도 만용이고, 시를 사달라고 고개 숙이며 다니는 것도 슬픈 일이라는 생각에서 그냥 ‘내 만족’으로 끝냈습니다.
사실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3보 이상 운전, 숨쉬기 운동을 제외한 어떠한 운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인생의 철칙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니어 아이돌을 표방하면서 가수 활동을 선언하고 나니, 노래도 해야 하고 안무도 따라가야 되더군요. 체력이 방전되면 안되겠다 싶어서 집 앞에 있는 피티샵에 등록을 하고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씩이지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요즘은 또 안일한 생각으로 중단된 상태입니다만, 다시 시작해야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두가 멈춰 선 곳에서 다시 출발하라’
정초신: 앞서 잠깐 언급했었습니다만, 인생관이랄 것도 없습니다만, 인생관, 세계관, 철학으로 뭉뚱그려서 이야기한다면, ‘포기하지 않는 도전 정신’일 겁니다. 카톡 프사에 써 놓은 ‘모두가 멈춰 선 곳에서 다시 출발하라’는 아포리즘이 정초신 철학의 표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환갑이 넘도록 살아오면서 어느 곳에서든 멈춰서서 세상을 바라본 적이 없는 듯 합니다. 멈춰 서는 순간 나의 정체성이 끝난다는 두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바닷물을 들이켜서 숨을 쉬지 못하기에 앞으로 나아가면서 물살을 헤쳐야만 호흡할 수 있는 상어처럼 쉬지 않고 전진하고, 멈추지 않고 변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으며 사는 듯 합니다.
7. 한 해, 두 해가 갈수록 인생의 가치와 중요한 것들이 달라지곤 하죠. 감독님께서는 어떤 점에서 변화를 겪으셨나요?
정초신: 아주 오랫동안 카톡 프로필에 쓰여져 있던 글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내 죽음에 슬퍼해 주기를’이었습니다. 유명한 인간이 되기보다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아까운 사람으로 남겨지길 기대했었던 거죠. 어쩌면 지나친 오만이었습니다.
대충 대학교 입학한 즈음에 만들었던 아포리즘이었는데, 거의 40여 년을 쓰다가 지금의 것으로 바꿔 넣었습니다. 현재 쓰는 아포리즘이 미리 써 놓은 묘비명이 되어 내 무덤에 새겨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단 한 번도 멈춰본 적 없던 이, 여기 멈추다.’
최근 활동하는 유튜브 ‘중계서원’은 오랫동안 아내가 기획했던 아내의 꿈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와는 결이 다른 작업이지요. 저는 어떻게 보면 몹시 천박합니다. 멈추지 않고 움직이기를 즐기다 보니 ‘깊이 보다는 넓이’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아주 얕은 지식으로 무장한 채 살아갑니다.
반면 아내는 정반대라고나 할까요. 도서관에 가서 책 읽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인데, 결국은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서 신박한 콘텐츠를 창조해 냈습니다. 저는 아내가 만드는 콘텐츠 속의 콘텐츠에 불과합니다. 목소리가 좋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발탁된 야매 성우, 저는 스스로 ‘리딩 노예’라고 합니다.
아내가 도서관을 정해 촬영을 나가면 따라 나가고, ‘여기서 책을 펼치고 있으시오’하면 그대로하고, 책을 정해 읽고 밑줄을 쳐서 주면 그대로 읽으면 제 역할은 끝입니다. ‘중계서원’ 유튜브에서 제 역할은 딱 그겁니다.
‘리딩 노예’ ㅋㅋㅋ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정초신 감독님, 오늘 자리를 빛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긴 인생 동안 많은 역경을 이겨 내시고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시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도전과 열정이 가득하신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우십니다. 앞으로도 품격 있는 질주를 계속 보고 싶습니다. 변함없는 사랑과 응원 보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중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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