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어의 민낯이야기 series 1.
예선영 대표 ㅣ 에이드프라미스
한국 돌봄 문화의 무거운 현실,
"가족인데 당연하지" 굴레
"돌봄은 사랑이어야 한다고 믿었던 나라에서, 우리는 왜 늘 죄책감을 느끼는가." 이 질문은 한국 돌봄 문화의 모순을 정확히 짚는다. 한국인들은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부족한 가족'이라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죄책감은 한국 돌봄 문화의 핵심 코드가 되었다.
한국의 돌봄 문화는 유교적 가족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전통에서 돌봄은 가족의 도리이자 인간됨의 증명이다. "가족이면 당연하지"라는 이데올로기는 한국 돌봄 문화의 근간이다.

우리는 왜 돌봄에 늘 죄책감을 느끼는가!
“돌봄은 사랑이어야 한다고 믿었던 나라에서,
우리는 왜 늘 죄책감을 느끼는가.”
한국 사회에서‘돌봄’은
유난히 무겁고 조용한 단어입니다.
아이를 맡기면 죄책감이 따르고,
부모님을 돌보지 않으면 죄인처럼 느껴지고,
케어서비스를 이용하면
게으르다는 시선이 따라옵니다.
왜 우리는 돌봄을 부탁하면서도 죄송해야 할까?
왜 누군가를 돌보다 무너지는 자신을,
오히려 ‘부족한 사람’이라 자책해야 할까?

K-돌봄의 역설: 가족주의와 시장주의 사이
한국에서 돌봄은 사랑이 아닌 의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면 죄책감이 따른다.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시면 불효자가 된다.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면 게으른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왜 한국인은 돌봄을 부탁하면서 항상 죄송하다고 말할까?
21세기 한국에는 수많은 돌봄 플랫폼이 존재한다. 에이드프라미스를 비롯한 케어 서비스가 일상에 파고들었다. 그러나 많은 이용자들은 여전히 묻는다.
"제가 이런 서비스를 받아도 될까요?"
"이건 사치 아닐까요?"
이런 환경에서 도움을 청하는 행위는 인간됨의 실패로 인식된다. 한국인들은 돌봄을 부탁하면서도 죄송함을 느낀다. 이는 한국 돌봄 문화와 유교적 가족주의, 다시 말해 현대 사회의 요구와 전통적 가치관 사이의 극명한 충돌을 보여준다.
한국의 돌봄 문화는 오랜 시간 유교적 가족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돌봄은 사랑이고, 희생이고, 무조건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강박. 하지만 이 구조 안에서는 ‘도움을 청하는 일’조차 인간됨의 실패로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도움을 받으면서도, 늘 마음 한편이 불편하고 무겁다. 시장이 들어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갇혀 있다.
K가디언즈 바로가기
https://www.k-guardians.kr/
시장은 열렸지만 마음은 닫혔다, 한국 돌봄 문화의 현재
한국 돌봄 문화의 현주소는 '서비스는 열렸지만, 정서는 닫힌' 상태다. 시스템은 현대화되었으나,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전통적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이 한국 돌봄 문화의 역설이다.
이제 한국에도 다양한 케어 서비스가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서비스는 열렸지만, 정서는 아직 ‘부탁하지 못하는 시대’에 머물러 있다. 혼자 감당하려는 사회 구조가 잘못되었다.
나는 묻습니다.
“당신은 돌봄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걸 왜 자꾸 스스로 허락 받으려 하시나요?”

한국 돌봄 문화의 새 패러다임,
'죄책감'에서 '자격감', '권리'로
돌봄은 특권이 아니라 권리다. 한국 돌봄 문화의 진정한 변화는 '죄책감'이 아닌 '자격감'에서 시작된다. 돌봄을 부탁하는 개인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돌봄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떠넘기는 사회 구조가 문제다.
에이드프라미스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돌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왜 자꾸 스스로 허락 받으려 하시나요?" 이는 한국 돌봄 문화가 직면해야 할 근본적 성찰이다.

한국 돌봄 문화 제3의 길, 시스템을 찾아
나는 가족주의도, 시장주의도 한국 돌봄 문화의 완전한 해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제3의 돌봄 문화—공감과 존중이 깃든 케어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케어는 사랑이지만, 그 사랑이 지속되려면 효과적인 시스템과 사회적 지원이 필수다.
한국 돌봄 문화의 미래는 죄책감 없는 돌봄, 지속 가능한 돌봄에 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사회 전체가 돌봄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이를 지원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돌봄 받을 권리를 선언하다
한국 돌봄 문화는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야 한다. 가족주의적 전통에서 비롯된 책임감과 헌신은 여전히 가치 있지만, 이것이 개인의 부담과 죄책감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변화해야 한다.
케어는 선물, 사랑에는 돌봄시스템이 필요
"케어는 사랑입니다. 하지만 사랑에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나는 한국 돌봄 문화의 미래를 정확히 예견한다. 돌봄의 무게를 함께 나누고, 죄책감 없이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회. 한국 돌봄 문화의 진정한 혁신은 거기서 시작된다.
가족주의도, 시장주의도 완전하지 않다. 이제는 제3의 돌봄 문화— 공감과 존중이 깃든 케어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케어는 사랑. 케어는 선물. 하지만 사랑에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하고, 죄책감 없는 돌봄을 위해.

Love Yourself! care more.
에이드프라미스 K가디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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