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대화재, 소헌왕후ㅣ문자 기원 서사
훈민정음 창제요?
이것 아니면 끝장,
뭐 그런 것이 있지 않았을까요?
정말 쉬운 백성의 문자 없으면,
우리 다 뒈져! 같은 것.
-예선영-
예선영은 『한성대화재 – 왕후 소헌』을 통해
훈민정음, 문자 기원 서사를 더 이상 ‘착한 이야기’로 두지 않는다.
그 대신 묻는다. 왜, 끝내 백성의 글을 만들어내야 했는가.
이 인터뷰는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는 세계를 해부하는 대화이다.
불타는 조선으로 초대할게요.
예쁘고 우아한 왕후는 여기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인간의 고통
냄새나는 목구멍의 숨소리를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예선영-
1446년 소헌왕후 승하 580주기.
2026년, 한성대화재 600주년.
쓰지 못한 목구멍 목소리를
기록한 작가
예선영 × ICU 국제돌봄연합 김선영 기자
목구멍 이야기
불이 지나간 자리, 00가 남았다
1426(세종 8년), 한성이 이틀동안 타들어 가던 날. 백성들은 이름들을 잃었다. 집도 잃었다.
남은 것은 하나였다.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

여기, 그 한성대화재의 불 속으로 거꾸로 걸어 들어간 작가가 있다.
재를 쓸어 담아 스토리를 만든 사람. 예선영.
『한성대화재 – 왕후 소헌』은 역사를 복원하지 않는다. 역사를 다시 묻는다.
이 인터뷰는 거의 심문에 가깝다.
예선영 작가는, 직면하고 펼친다.

Q1. 인왕산에서 ‘소헌왕후였네요’라는 말을 들으셨다면서요.
예선영 : 10년 전, 인왕산에서 스쳐 지나간 어르신이 말씀하셨어요. 그때 저도 몰랐습니다. 전생에 소헌왕후셨네요...전생이라는 말에, 그냥 웃고 지나갔습니다.
김기자 : 그런데 나중에 세종대왕의 왕비였다는 걸 알게 되셨죠?
예선영 : 그 순간…사실 부끄러웠습니다. 소헌왕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로요. 자랑스런 세종 옆에 세종이 존경했던 왕후가 있었다는 걸. 그 느낌이… 이상하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집착이 되었고, 공부를 했고 결국 쓰게 됐습니다. 이 이야기를 4년 동안 썼고, 그 전에 5년을 소헌왕후 연대기를 습작했고… 아니, 10년을 품고 있었던 것이지요.
김기자 : 부끄러움이 작품으로 이어진 건가요? 소헌왕후가 누구길래 그 한마디가 이렇게 대작까지 이어진 건가요?

예선영 : 처음엔 소헌왕후에 대해, 세종에 대해 그냥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멈출 수 없게 됐습니다. 이름 하나가 아니라—잊혀진 이야기들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썼습니다. 5년 전에는 영화와 뮤지컬을 만들려고 작업했습니다. 왕후 소헌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인문학, 문학적인 글과 책이 반드시 필요함을 느꼈어요.
그래서 2023년에 장편을 완성하고 영화프로젝트를 들고 을지로 심씨 종회 빌딩으로 찾아갔답니다. 마침 청송 소헌왕후 종회 축제를 준비하고 계시더라구요.
이 소설은 한성대화재 48시간을 중심으로 왕후 연대기를 압축해 그린 장편 역사소설입니다. 시기 질투하는 못된 왕후, 미화된 왕후 말고, 제대로 된 국모 롤모델이 우리나라에도 있어야 한다는 묘한 사명감이 있었어요. VIP돌봄헬스케어 사업으로 쉬는 날도 없었지만 자는 시간을 줄여 끝까지 완성했고요.
그래서 왕후심씨. 소헌왕후님을 서사의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역사 고증과 실록 사료를 오래 찾아보았어요. 거기에 담대한 상상력으로 재구성했지요. 이야기가 재미있어야 하니까요. 개연성은 물론 있어야 하고요. 그리고 한 질문을 끝까지 들고 갔아요. 국가 재난 후에 왜 백성의 글, 훈민정음이 필요해졌는가를 묻죠.

Q2. 작가님은 기존 서사를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훈민정음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 만들어졌다는 세종실록에, 오히려 조선의 글자 창제가 국가재난과 통제,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공포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입니다. 이건 해석이 아니라 선언 아닙니까? 조선의 문자는 연민이 아니라 폭력, 트라우마에서 태어났다......”
살려주시오! 목구멍에 대하여
1. 백성의 문자는 절박함, 공포에서 태어났다
예선영 작가
기존의 ‘백성을 불쌍히 여겨 만들었다’는 실록의 기록, 왕의 마음이 정말 감동적이죠. 오히려 판타지 같을 정도지요. 그러나 작은 에피소드를 봤거나 또는 연민만으로는 창제 동기가 약합니다.
문자를 끝까지 완성할 수 있었던 강력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훈민정음 창제에 걸린 시간과 동기를 생각해봤어요. 최만리의 반대 상소. 명나라와의 외교 마찰. 사대부들의 냉소. 문자를 바꾼다는 것은 권력 지형을 깨부수고 바꾸는 일이었잖아요. 그 반발이 어느 정도였을지. 그냥 단순한 선의만으로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예요.
오래 물었지요. 백성들의 글이 '쉽게' 나왔을까. 위대한 것이 쉽게 나오는 것 보셨습니까?
훈민정음 창제의 구체적인 동기부여와 과정은 남아 있지 않아요. 기득권들의 반대가 컸다는 실록기록들이 있어요. 과정과 구체적인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토록 간절했을까. 왜 비밀에 부쳐졌을까. 무슨 힘으로 끝까지 해낼 수 있었을까? 눈이 완전히 멀고 나서도 끝까지 완성해야만 했을까?
이것아니면 끝장, 뭐 그런 것이 있지 않았을까요?
정말 쉬운 조선문자. 이것 없으면, 우리 다 뒈져! 같은 것.
무엇이 그 절실함을 만들었는가.
그 동기와 시작이 국가재난 급의 강력한 트라우마와 공포가 있어야 끝까지 끌고 갈 힘이 나왔을 것이라고 봤어요.
흑역사가 원동력....
인류는 안락 속에서 사유를 길러내지만,
공포와 상실의 한 가운데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도구를 만들잖아요.

1426년의 한성대화재는
조선 최악의 국가재난이었다.
단순한 민가 실화 화재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전면 붕괴였다.
나는 왕과 왕후의 트라우마를
강력하게 피부로 느꼈다.
그래서 한성대화재가 조선 문자 창제에
강력한 동기 부여를 준,
백성을 위한 의도된 언어 창조 서사로서
느낀대로 써내려 갔다.
-예선영 작가-
…폭력이라는 말은 강합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정확히 표현해보자면 폭력 속에서도 살아남으려는 목구멍과 몸부림입니다. 불 속에서 사람은 하나만 합니다.
"살려주시오!"
살려달라고 외칩니다.
그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하고, 구하지 못하고 적지 못했다면
......그보다 잔인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훈민정음은 따뜻합니다.
인간의 목구멍을 알고 밑바닥 끝까지 겪은 고통을 아는 글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성의 글씨는 강합니다. 살아남은 백성들의 글자이기 때문입니다.
한성대화재 -소헌왕후- 세계에서는 그렇게 봅니다.

Q3. 훈민정음’이라는 브랜드를 묻다
훈민정음은 문자입니까, 브랜드입니까
Q. 작가님은 훈민정음을 단순한 문자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구이고 시스템이고 지금은 하나의 ‘브랜드’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선영
저의 세계에서는 지금. 브랜드입니다. 이미 한글은 브랜드이고요. 제가 케어 시스템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쓰게 만드는 힘, 전달하는 힘, 소통하는 힘, 데이터를 재빠르게 영구히 전달하는 것. 쉽고 재미있고 매력적인 것.

지누출판 © AID Promise. All Rights Reserved.
백성의 문자는 연민 뿐만 아니라, 절박함에서 태어났다
김선영 기자
세종은 최초의 브랜드 설계자, 세종은 단순한 군주가 아니라 설계자 입니까?
예선영
“대왕님은 백성의 라이프스타일을 고양시키고 자유를 선물했고 행동을 바꾼 사람입니다.”(웃음)
“읽고 쓰고 전달하고 말하게 만들었습니다.”

김선영 기자
“훈민정음의 핵심 가치는 무엇입니까? 기술입니까, 철학입니까?”
예선영
“접근성입니다.”
“가장 낮은 곳까지 닿는 힘.”
“그리고—존엄.”
김선영 기자
“이건 권력의 이동. 조선시대에 백성의 문자가 생긴다는 건 권력의 재편입니다.
훈민정음은 권력자들에게 위협이었겠죠.”

예선영
“글은 권력입니다.”
“누가 쓰느냐 어떻게 쓰느냐가 세상을 바꿉니다.”

김선영 기자
“자유입니까, 통제입니까?
예선영
“…둘 다입니다.”
“강한 힘은 양쪽을 가집니다.”
김선영 기자
“이 작품은 재난이 아니라, 훈민정음은 인간의 목구멍과 사회의 구조를 해부하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예선영
“불은 핑계입니다. 오브제입니다.”
“누군가는 물을 들고, 누군가는 문을 잠그고,
누군가는 돌아섭니다.누군가는 불을 굴립니다.
누군가는 재 위에 재건을 합니다.
저 같은 인간은 감동 이야기를 불어 넣습니다.
“저는 그 차이를 썼습니다. 불은 …
드러내는 장치일 뿐입니다.
깊이 체험한 후,
남는 것은 좀더 정교해지고 개선한 시스템.
의식 고양.
그러나 나는 사실 불을 쓰지 않았어요.
사람을 썼습니다

김선영 기자
“세종대왕이 아니라 훈민정음에 왕후를 중심에 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선영
“왕은 결정을 남깁니다. 왕후는 깊은 관찰자였습니다.”
“저는… 결과를 썼습니다.”
“왕후를 세운 것은, 시선을 뒤집기 위해서입니다.”
김선영 기자
“기록되지 않은 것을 쓰는 순간. 그것은 소설가로서 어떠하십니까?”
예선영 작가
“쓰지 않으면,
영원히 없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씁니다.
대신… 더 무겁게 씁니다.”
가치, 밸류 업. 꿈보다 해몽과 해석.
기록의 여백에 이야기를 불어넣는 창작입니다. 인문학 크리에이터의 몫입니다. 이에 관해 다양한 작가들의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으면 합니다.”

Q4. 불을 더 엄히 굴려, 글을 만들겠다는 생각
김선영 기자
작품 속에서 불과 인간의 목구멍, 문자가 연결되는 설정은 정말 탁월하고 인상적입니다.
예선영 작가
불은 모든 것을 태웁니다.
계급도, 집도, 이름도. 남는 건… 목소리뿐입니다.
그 목소리를 붙잡기 위해 글이 필요합니다.
“불을 더 엄히 굴려 백성이 제 목구멍의 소리를 쓰게 하리라.”
이건 저의 선언입니다.
2023년, 심씨 종회에서 들은 이야기
김선영 기자
영화화를 염두에 둔 작업도 진행 중이라 들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예선영 작가
소헌왕후를 공부하면서 보이는 것은 영상들이었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글로 옮겼습니다. 2023년에 심씨 종회(을지로 빌딩)를 초청받아 찾아갔습니다. 이미 장편소설을 써서 들고 갔지요. 사무총장님과 실장님 등, 따뜻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심씨 후손들과의 만남은 참 즐거웠고 감명 깊었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왕후는 늘 왕의 뒤에 있었다고들 하지요.
그런데… 그 뒤가, 제일 위험한 자리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확신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반드시 미디어로 나누어 봐야 한다고요.
Q5. “쓰는 동안, 손을 몇 번이나 멈췄다”
김선영 기자
집필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예선영 작가
이것은 여태까지 작업할 때의 사진들 중 일부입니다.
웃고 찍었지만, 사실 저의 찬란한 흑역사들입니다.
본격적으로 2020부터 카페에서 집에서, 차 안에서......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오래 했지요.
돌봄케어 사업과 국제돌봄연합 조직을 하면서요.
원고를 붙들고 있으면서, 자주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장면들을 쓸 때였습니다. 그걸 쓰다가 손을 자주 멈췄습니다.
‘이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개연성이 있는가. 그런데 곧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썼습니다. 작가는 종종, 윤리보다 진실을 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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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6. 이 소설의 의의? 위험한 질문이네요
김선영 기자
이 작품이 가지는 의의와 가치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예선영 작가
이 질문은… 위험합니다. 작가가 자기 작품의 가치를 말하는 순간, 대개 실패합니다.(웃음)
그래도 말하자면. 실패해도 죽지 않습니다 뭐.
이 소설은 토가 쏠리도록, 꼴도 보기 싫을 때까지. 죽도록 썼습니다.
이야기 구성을 통째로 바꾼 것이 2번이었구요.
훈민정음을 ‘착한 이야기’에서 꺼내 ‘필요한 이야기’로 바꿉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당신이라면, 무엇을 남기겠는가.” 그 질문 정도가 남는다면, 읽을 만 하다, 하면 이 이야기는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유머요? 불 속에서도 사람은 웃습니다”
김선영 기자
작품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스케일이 크고 슬프고 스펙타클하고 끝날 때까지 계속 눈물나고 놀랍고 무겁고 재미납니다. 다음 페이지를 보고 싶어서 혼이 났습니다. 첨 이상한 것이 곳곳에 묘한 유머들이 있습니다. 맑은 슬픔. 매력적입니다.
예선영 작가
그것이 예작 스타일입니다. 사람은 죽기 직전에도 농담을 합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소설 어디에서 이 비슷한 말을 하죠.
“짐짝에는 숨을 세지 않지 않습니까.”
웃기죠. 그런데… 끔찍합니다. 그래서 인간적. 웃다가 멈추게 되는 웃음.
김선영 기자
“훈민정음은 작가님 말씀대로 무기입니까?”
예선영
“백성의 문자는 구원이기도 했지만 방법인 것 같습니다.”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김선영 기자
“이 시대에 다시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무엇입니까?지금, 왜 다시 훈민정음입니까”
예선영
“지금도 사람들은 말하거나 쓰지 못합니다. 표현할 수 없는 상태.
그건 시대를 가리지 않습니다.”
김선영 기자
“훈민정음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예선영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게 만든 구조라고 봅니다.”
김선영 기자
독자에게 한 문장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예선영 작가
한성대화재 소설로 말할게요.
“불은 이미 와 있다.” 생명력!
“우리는 이미 지금 여기 집에 있노라. ”(웃음)

“나는 불을 쓰지 않았다. 사람을 썼다”
"왕후를 세운 것은, 시선을 뒤집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김선영 기자
문자 창조 훈민정음에 왕이 아니라 왕후를 중심에 둔 건 정치적 선택입니까?
예선영 작가
저는 처음부터 소헌왕후 연대기를 썼어요.
기록은 늘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저는 아래에서 위를 보려 했습니다.
왕은 결정을 내립니다.
왕후는 그 결정의 동기부여자이자 동력이었습니다.
소헌왕후 심씨.
조선에서 왕후란 하늘에 가장 가까운 여자.
이미 가슴이 타 재가 되어 있던 왕후는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불의 방향과 다르게 거꾸로 내려갔다.
위에서 아래로. 왕후의 자리에서 잿더미 속으로.
궁궐의 안온함에서 목구멍이 끊어지는 소리 속으로. 스스로 내려갔다. 훈민정음은 그들의 피의 값으로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예선영 작가
Q7. 그 장면, 정말 써도 되는 것이었습니까(스포일러일 수 있어, 짧게)

예선영 작가
저는 처음부터 소헌왕후 연대기를 썼어요.
기록은 늘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저는 아래에서 위를 보려 했습니다.
왕은 결정을 내립니다.
왕후는 그 결정의 동기부여자이자 동력이었습니다.
소헌왕후 심씨.
조선에서 왕후란 하늘에 가장 가까운 여자.
이미 가슴이 타 재가 되어 있던 왕후는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불의 방향과 다르게 거꾸로 내려갔다.
위에서 아래로. 왕후의 자리에서 잿더미 속으로.
궁궐의 안온함에서 목구멍이 끊어지는 소리 속으로. 스스로 내려갔다.
훈민정음은 그들의 피의 값으로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예선영 작가-
Q7. 그 장면, 정말 써도 되는 것이었습니까(스포일러일 수 있어, 짧게)

김선영 기자
“그 00, 00장면. 인간의 경계를 넘습니다. 써야 했습니까?”
예선영 작가
“…저도 멈췄습니다. 100번은 고쳐 쓴 것 같습니다. ”
“그런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시대는 더했겠구나. 그래서 지우지 않았습니다......”
“훈민정음은 도구였다”
김선영 기자
작품에서 훈민정음은 따뜻한 선의의 결과가 아니라 어떤 ‘필요’의 산물로 보입니다.
예선영 작가
“존엄한 무기이기도 했지만 방법입니다.”
“살아남는 방법.”
Q8. 소설에 대반전이 있는데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아! 전율이 일고 여운이 크게 남았습니다.
그건 그렇고 예작가님은… 범인을 용서하셨습니까?
예선영 작가
저는......이해하려 했습니다. 이해가 됩디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한글로 쓰게 되어 감개무량합니다.
고맙습니다. 소헌왕후님 세종대왕님.
그리고 왕실가족들과 민들레같은 아이들과 여인들께,
한글을 살리기 위해 힘쓰신 선조님들께 모두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

모내기할 때 노래를 부르는 민족. 이웃의 논도 함께 심어주는 민족. 같은 반찬에 여러 젓가락이 꽂혀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민족. 고통이 오면 혼자 울지 않고 함께 소리를 만들어온 민족.
그게 한민족이지요.
좌우지간 한성대화재가 책이든 미디어든 읽어보시고 느껴보시고 다시 우리 이야기 나누어요. 불은 무엇을 끝내 태우지 못하는가. 정신은 불에 단련되어요. 뜨거워 질 뿐, 눈이 떠지고 귀가 까지게 해 줘요.
한과 흥. 조선의 불 훈민정음. 전 세계로 타오르는 것을 축하하면서.
-예선영 작가-
OUTRO
인터뷰가 끝났다. 녹음기는 꺼졌고, 방안은 조용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이 남아 있다. 타오르는 불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것.
소설은 너무나 재미있었으나 질문 하나가 남았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기록하지 않고 있는가.
예선영 작가는 불을 쓰지 않는다. 지워지고 남겨지지 않은 소리를 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스토리 아키텍트 예선영의 세종대왕 차기작도 기대된다.

1446년 소헌왕후 승하 580주기.
2026년, 한성대화재 600주년을 앞두고
-서울 강남 한성빌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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