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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대화재 소헌왕후』 예선영 작가 I 세종이 자리를 비운 이틀, 한성이 불바다가 됐다... 600년 전 48시간 동안 국가위기를 막아낸 국모!

Columnist John Shim

왕이 없던 이틀, 조선을 지킨 여인

1426년 한성 대화재와 소헌왕후의 선택,

그리고 오늘의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


출처 : 본 콘텐츠는 아래의 공식 방송 인터뷰를 토대로 제작되었습니다.
방송 프로그램 : 연합뉴스TV JOB 《북큐 : 어떤 작가·동네책방》 (제10회)
방송 일시: 2026년 9월 17일

📌 10년의 집념, 그리고 600년 만의 운명적 출간 예선영 작가가 소헌왕후를 접하고 사료를 찾아 헤맨 기간만 10년. 처음에는 영화 시나리오로 기획했다가 소설로 발전, 2023년에 완성 후 때를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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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은 소헌왕후 승하 580주년, 한글 반포 580주년, 그리고 한성 대화재 6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 작가는 이 운명적인 시점에 맞춰 책을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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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성이 잿더미가 되던 날, 조선을 구한 국모 조선판 대재난 '한성 대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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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강무(사냥 및 군사훈련)를 위해 도성을 비운 이틀 사이, 수도 한성(서울)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는 초유의 국가 위기가 발생합니다. 불길 속에서의 결단: 세종은 떠나기 전 "국모가 하라는 대로 하라"며 조정 대신들에게 권한을 위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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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속에서 소헌왕후는 "곡식 창고와 돈 창고는 다시 채우면 된다! 가장 중요한 종묘와 창덕궁을 목숨 걸고 지켜라!"라는 명령을 내리며, 붕괴 직전의 국가 시스템을 지켜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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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대왕이 평생을 존경했던 유일한 여성 조선 왕실 실록에는 소헌왕후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세종대왕조차 소헌왕후가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매번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했을 정도로 그녀의 인품과 정무적 판단력을 깊이 존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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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성군 세종이 존재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바로 소헌왕후의 완벽한 내조와 결단력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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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에는 직장인, 주말에는 역사 작가의 삶 평일에는 본업에 집중하고, 주말과 여가 시간을 쪼개 집요하게 글을 쓰는 예선영 작가. 그녀는 현재 소헌왕후에 이어 '조선의 음악 이야기'를 주제로 한 차기작을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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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본 콘텐츠는 아래의 공식 방송 인터뷰를 토대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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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프로그램: 연합뉴스TV JOB 《북큐: 어떤 작가·동네책방》 (제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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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일시: 2026년 9월 17일 출연자: 예선영 작가 (저서: 《한성대화재 소헌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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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장소: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동 '같이 산책' 책방 (책방지기 인송) 원본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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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위대한 성군 세종대왕 뒤에는, 역사 속에 숨겨진 위대한 국모 '소헌왕후'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명성황후나 장희빈은 알아도, 정작 조선 최고의 성군 세종대왕의 곁을 지킨 '소헌왕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예선영 작가는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실록과 사료를 집요하게 추적하며, 수동적이고 조용한 인물로만 치부되던 소헌왕후의 압도적인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세상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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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대화재 소헌왕후』 예선영 작가 I 세종이 자리를 비운 이틀, 한성이 불바다가 됐다... 600년 전 48시간 동안 국가위기를 막아낸 국모!
연합뉴스TV JOB 《북큐: 어떤 작가·동네책방》 (제10회)
예선영 작가

이 칼럼이 출발하는 질문은 단 하나다.

“국가의 중심이 흔들리는 순간,

한 사람의 선택은 백성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이 질문은 왕이 도성을 비운 1426년 한성의 이틀과, 그 공백을 메운 한 여인의 선택을 통해 구체화된다. 칼럼은 소설을 홍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질문이 오늘날의 재난 대응·행정 공백·사회적 약자 보호 문제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추적하기 위해 쓰였다.

완성된 역사 · 문학 · 문화 칼럼

불길 속으로 I 1426년 2월, 한성이 타오르다

불은 점심 무렵 시작되었다. 세종 8년, 1426년 음력 2월 15일. 서북풍이 크게 불던 그날, 한성부 남쪽 인순부의 종 장룡의 집에서 피어오른 작은 불씨는 순식간에 도성 전체를 집어삼켰다.

초가와 기와가 뒤엉킨 좁은 골목, 다닥다닥 붙은 민가들 사이로 불길은 바람을 타고 번져나갔다. 경시서와 그 북쪽 행랑 116칸, 중부의 인가 1,630호, 남부의 350호, 동부의 190호가 하루 만에 잿더미가 되었다.

『세종실록』은 남자 9명과 여자 23명의 죽음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어린아이와 늙고 병든 사람으로서, 타죽어 재로 화해버린 사람은 그 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숫자로도 셀 수 없었던 죽음들이었다. 그리고 그날, 도성에는 왕이 없었다.

『한성대화재 소헌왕후』 예선영 작가 I 세종이 자리를 비운 이틀, 한성이 불바다가 됐다... 600년 전 48시간 동안 국가위기를 막아낸 국모!

『세종실록』이 기록한 그날

조선왕조 역사상 최악의 화재로 꼽히는 이 사건은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 날인 2월 16일에도 다시 불이 나 전옥서와 민가 약 200호가 추가로 소실됐다. 조정은 방화 정황을 조사해 관련자를 체포·처형했고, 이재민에게 구호양곡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열흘 뒤인 2월 26일, 세종은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 소방 관청인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하라고 명했다.

좁은 길을 넓히고 방화장을 쌓게 했으며, 민가마다 우물을 파도록 하고, 종묘와 대궐, 종루에 소화 기구를 비치하게 했다. 재난은 참혹했지만, 그 참혹함은 조선 최초의 재난 대응 제도를 낳는 계기가 되었다.

『한성대화재 소헌왕후』 예선영 작가 I 세종이 자리를 비운 이틀, 한성이 불바다가 됐다... 600년 전 48시간 동안 국가위기를 막아낸 국모!

왕이 없는 나라 I 위기는 권력의 공백을 시험한다

『세종실록』이 남긴 문장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따로 있다.

“중궁(中宮)은 불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서울에 남아 있는 모든 대신과 백관에게 전교(傳敎)하기를, ‘화재가 일어났다 하니, 돈과 식량이 들어 있는 창고는 구제할 수 없게 되더라도, 종묘와 창덕궁은 힘을 다하여 구(救)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는 사관이 직접 기록한 문장으로, 화재 당일 국정 지휘 계통의 정점에 중전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1차 사료다. 세종과 세자가 강무 등의 이유로 도성을 비웠던 정황은 여러 후대 자료에서 언급된다.

위기는 늘 제도가 상정한 대로 오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은 결국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소헌왕후 진영 昭憲王后 眞影 159x130cm 대전중채 絹本重彩
소헌왕후 진영 昭憲王后 眞影 159x130cm 대전중채 絹本重彩

소헌왕후의 선택, 역사와 소설 사이

여기서 역사적 기록과 문학적 상상력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실록이 증언하는 것은 ‘중전이 대신들에게 종묘와 창덕궁을 구하라 명했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 지시가 내려지기까지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어떤 두려움과 판단을 거쳤는지는 사료가 말해주지 않는다. 소설 『한성대화재 소헌왕후』은 바로 이 여백에 서사를 채운다.

왕이 부재한 이틀 동안 소헌왕후가 실질적인 위기관리자로서 도성을 지휘했다는 설정은 작가의 문학적 재구성이며,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사료의 여백을 상상력으로 복원한 결과다.

역사소설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기록이 침묵한 자리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질문을 되살리는 일이다.

예선영 작가는 왜 이 화재를 다시 썼는가

『한성대화재 소헌왕후』 예선영 작가 I 세종이 자리를 비운 이틀, 한성이 불바다가 됐다... 600년 전 48시간 동안 국가위기를 막아낸 국모!
소설가·크리에이터·CEO I 예선영 작가

필명 오예(吾藝)로도 활동하는 예선영 작가는 이 소설에서 하나의 대담한 문학적 가설을 세운다.

한성 대화재라는 국가적 트라우마가, 18년 뒤 반포되는 훈민정음 창제의 정서적 뿌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글을 읽고 쓰지 못해 화재 속에서 구조 요청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백성들의 무력함이, 문자 없는 삶이 곧 권리의 박탈이라는 인식으로 이어졌다는 서사적 상상이다.

이 연결은 실록에 명문화된 역사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작가가 제시하는 문학적 해석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둔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 “불이 꺼진 자리에서, 획이 시작되었다” 은 이 서사적 가설을 한 문장으로 응축한다.

세종의 부인 소헌왕후 재조명|명성황후와 비교한 실록 속 진정한 국모 이야기
세종의 부인 소헌왕후 재조명|실록 속 진정한 국모 이야기

셀 수 없었던 죽음들 I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역사

실록이 남긴 “그 수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문장은 이 칼럼에서 가장 무거운 대목이다.

국가의 공식 기록조차 헤아리기를 포기한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은, 재난이 언제나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가장 가혹하게 닥친다는 것을 방증한다. 노인과 아이, 병든 사람, 그리고 이름조차 남지 않은 여성들. 역사소설이 하는 일은 이들에게 얼굴과 이름을 되돌려주는 일이다.

소헌왕후라는 국가 최상위 신분의 인물을 통해 위기의 순간을 조명하는 동시에, 그 이면에서 스러진 무명의 백성들을 함께 응시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역사소설이 공식 사료를 넘어 수행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다.

도성이라는 이름의 사회 I 조선 전기 한성의 화재 취약성

조선 전기의 한성은 인구가 급격히 밀집되던 신생 수도였다.

초가지붕이 대부분이었고 가옥은 다닥다닥 붙어 지어졌으며, 방화벽이나 소방 조직은 체계화되어 있지 않았다. 1426년의 화재는 당시 한양 전체 가옥의 상당 부분을 태운 것으로 전해지며, 이는 단순한 개별 사고가 아니라 도시 구조 자체의 취약성이 낳은 필연적 재난에 가까웠다.

금화도감의 설치, 가옥 간격 확보, 우물 확충, 방화장 축조는 이 취약성에 대한 조선 국가의 첫 제도적 응답이었다. 오늘날의 도시 안전 정책과 마찬가지로, 재난 이후의 제도화가 결국 다음 재난의 규모를 결정한다는 교훈은 600년 전에도 유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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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전 재난이 오늘 우리에게 묻는 것

1426년의 한성과 2026년의 대한민국은 다른 시대를 살지만, 재난 앞에서 던져지는 질문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휘 체계의 공백은 누가 메우는가.

사회적 약자는 재난 통계 안에서 제대로 헤아려지고 있는가.

그리고 재난 이후의 제도는 다음 재난을 막을 만큼 정교해지고 있는가.

이 질문들에 정답을 내리는 것은 이 칼럼의 몫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국가의 회복력은 평상시의 제도만큼이나, 위기의 순간에 공백을 메우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감에서 만들어진다는 것. 그것이 600년 전 한성의 불길이, 오늘의 우리에게 여전히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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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I 불이 꺼진 자리에서

소헌왕후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 아니다.

그녀의 이름은 대개 세종의 배우자로서, 혹은 여러 대군과 공주의 어머니로서 짧게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1426년 2월의 이틀, 실록은 그녀에게 국정의 지휘봉을 쥐여주는 문장을 남겼다. 소설 『한성대화재 소헌왕후』은 이 짧은 문장 속 여백을 상상력으로 채워, 기록되지 못한 한 사람의 무게를 되살린다. 불은 오래전에 꺼졌다.

그러나 그 잿더미 위에서 무엇이 다시 세워졌는가를 묻는 일은, 오늘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으로 남는다.

1426년 세종 8년 한성 대화재 당시, 국왕과 세자가 도성을 비운 사이 중전 소헌왕후가 종묘와 창덕궁을 구하라는 전교를 내렸다는 사실이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 실록의 짧은 문장을 소설 『한성대화재 소헌왕후』은 위기 속 여성 지도력에 대한 문학적 서사로 확장하며, 훈민정음 창제와의 연결은 작가의 문학적 해석임을 명확히 한다.

화재는 조선 최초의 소방 기관인 금화도감 설치로 이어졌다.

이 칼럼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을 구분하면서, 재난과 리더십,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역사라는 오늘날의 질문으로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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